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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병동 4부 마지막파트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떨다 지쳐 말라죽은 것 같던 춘란(春蘭)이 봄이 되자 작은 새싹을 틔우니 나도 몰래 울컥 목이 메어왔다. 나도 어떤 의미에서 병든 아버지에게는 또다시 내일을 살아갈 싹이요, 씨앗인 것이다. 물론, 그 싹이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인 지 그렇지 못할 것인 가는 온전히 싹의 운명적 몫이 되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주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덩그러니 병동이 눈앞에 들어온다. 고독의 성으로 둘러싸인 병동의 담장 위로 윤기 나는 검은 빛깔의 고양이가 이방인(異邦人)의 출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본관에서 근무하는 몸 집 좋은 담당과장은 갈 때마다 인사를 해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굵은 뿔테안경을 연신 위로 올리면서 눈길을 주는 둥 마는 둥 복잡한 진료차트만 뒤적이고 있다. 수..

단편소설 2024.01.09

바둑과 훈수꾼

'신선놀음'이라고도 불리우는 바둑은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고 그 기기묘묘한 수는 가늠조차 쉽지 않습니다. 정작 바둑을 두는 장본인보다 옆에서 구경하는 훈수꾼이 묘수를 더 잘보는 이유는 어떤 부담감도 갖지 않고 평정심으로 바둑판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었보다 바둑을 잘두기 위해서는 형세판단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형세에 따라 공격을 할 것인가, 방어를 할것인가 판단을 내려야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시간제한을 두지않아 한 판의 바둑을 밤을 세워 며칠씩 두기도 하였지만 요즘은 시간제한을 두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에 착점을 해야지 초읽기에 몰리다보면 자칫, 패착을 두기 쉽습니다. 대부분 승률이 좋은 기사들은 많은 기보연습이나 복기 그리고 다양한 수에 대한 공부가 선행하겠지만 자기바둑은 철저히 안전하게..

창작그림 2024.01.09

제7병동 3부

7 병동은 하나의 운명공동체다. 법 없이도 살만큼 순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툭하면 푼돈을 빌리고 고래심줄처럼 갚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먹지 말라는 술을 몰래 마시고 와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주정뱅이가 골치를 아프게도 하였다. 취미생활도 취향대로 제각각 다양하여 낚시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물가로 몰려다니며 강태공의 후예를 자처하였고 방에서 좀처럼 잘 나오지 않는 은둔자들은 책과 음악에 파묻혀 세월을 잊었다. 썰렁하고 칙칙한 옥상을 천국의 하늘정원으로 바꾸어 놓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화분마다. 눈물겨운 생명의 손길을 쏟아부었다. 마땅하게 취미가 없는 사람들은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며 쓸모없는 참견인 노릇도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병동 맞은편에 있는 지하 길다방에서 젊은 날의 무용..

단편소설 2024.01.09

제 7병동 2부

그곳은 작은 의료원안에 특정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만 격리수용하는 이층 블록건물이다. 건축한 지가 오래되었는지 여기저기 벗겨진 흰색페인트의 외관은 창백한 환자들의 얼굴을 닮아있었고 일반병동처럼 병문안 오는 사람도 드물어 자칫, 텅 빈 건물로 오해할 만큼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병실복도에 들어서면 간단한 개인취사도구도 눈에 띄었고 생기 없이 퀭한 눈으로 바라보는 깡마른 사내들의 ㅁ무표정한 눈길이 따가운 화살처럼 날아왔다. 습한 여름철에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병원특유의 약물냄새가 뒤섞이어 비위를 건드렸다. 눅눅해진 복도구석에서 음습한 그림자가 스멀스멀 돌아다니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곳, 이곳은 제7병동이다. 탄광촌에서 폐질환을 얻은 사람들이 불치의 선고를 언도받고 기약 없이 요양하면서 치료를 받는 곳이..

단편소설 2024.01.09

곰들의 아이스하키

이따금 동물원에 들릴 때마다 '과연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철창안에 동물을 가두어놓고 관람객들의 구경꺼리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족관에서 자라는 돌고래는 원래 가진 수명의 십분의 일도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드넓은 바다에서 살아가야 하는 데 비좁은 곳에서 지내다보니 스트레스가 많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연의 섭리대로 그들만의 영역에서 살아가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 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더 이상 무분별한 삼림의 파괴와 인위적으로 자연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를 멈추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안일한 눈요기를 위해 더 이상 동물들의 메마른 눈에서 슬픈 눈물을 흐르게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인간과 다른 ..

창작그림 2024.01.08

남자들도 때로는 수다를 떨자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주의밑에서 자란 탓인지 남자는 말이 많아도 안된다, 잘 울어서도 안된다, 부엌 근처에 가서도 안된다는 묵시적인 환경에 익숙해진 탓인 지 지금도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라면 끓이는 수준밖에 되지 못한다. 맞벌이 부부면서 늦둥이 딸을 두었는 데 막내딸은 엄마가 없을라 치면 "아빠, 우리 라면 먹을까? " 하며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아니, 엄마는 잘해주지 않는 요리를 은근히 요구한다. 눈치가 9단이다. 요리를 잘하면 몸에 더 좋은 것도 해주고 싶은 데 나름 레시피라고 검색해서 요리를 해보면 국적불문의 이상한 퓨전요리가 되어 식구들 누구 하나 수저를 대지 않으니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로서 자격미달이다. 그나마 아내가 잘 봐주는 것은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맛있게 잘 먹는 ..

에세이 2024.01.08

숯부작만들기

앙증맞은 숯부작소품 숯은 예로부터 독성을 제거하고 공기정화기능이 있으며 여름철엔 제습 물을 부어 놓으면 겨울철엔 가습효과가 있습니다. 국산참나무숯과 수반 장식용소품만 있으면 쉽게 작품을 만들수 있답니다. 요즘은 가격대때문에 중국이나 동남아에서도 수입되고 있지만 그 효능은 신토불이 국산숯을 따라오기 쉽지않답니다. 항아리수반을 이용한 숯부작수반모양이나 크기에 따라 다르게 연출되는 숯부작 제모양대로 결을 살려 만들어도 멋이 있습니다.버섯모양으로 갓을 만들기도 하고 소나무모형으로 멋을 더하기도 합니다. 수반모양에 따라 운치도 달라집니다.배모양의 수반개업식이나 승진 효도 선물로도 인기가 좋습니다. 무었보다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으니까요.고급수반은 물레방아 모타가 달려있어 물을 빨아올려 물레방아를 돌려주기도 합..

일조권

배 개인 오후 샛강 너머로 오롯이 일곱색깔 무지개가 뜨고 속살거리듯 생경스런 풍경위로 비추이는 햇살이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습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남에게 폐끼칠 정도는 아니고 늙으신 어머니와 툇마루에서 겸상을 하고 수수한 모습의 아내가 부쳐주는 부침개를 먹으며 행복감에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외양간에 누렁이가 울음을 울면 로마제국의 흑기사처럼 검은 흑염소들이 코맹맹이 소리로 따라웁니다. 아이들의 검게 탄 얼굴과 짙어가는 신록의 빛깔속에서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는 산골 논에는 하얀 의관을 차린 선비처럼 고고한 백로가 느긋이 먹잇감을 찾아다닙니다. 시골고향은 한 폭의 동양화 그 여백에서 거늬는 푸근한 인심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리면 썰매타기, 팽이치기, 연날리기에 신이 나 짧은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창작그림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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