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떨다 지쳐 말라죽은 것 같던 춘란(春蘭)이 봄이 되자 작은 새싹을 틔우니 나도 몰래 울컥 목이 메어왔다. 나도 어떤 의미에서 병든 아버지에게는 또다시 내일을 살아갈 싹이요, 씨앗인 것이다. 물론, 그 싹이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인 지 그렇지 못할 것인 가는 온전히 싹의 운명적 몫이 되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주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덩그러니 병동이 눈앞에 들어온다. 고독의 성으로 둘러싸인 병동의 담장 위로 윤기 나는 검은 빛깔의 고양이가 이방인(異邦人)의 출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본관에서 근무하는 몸 집 좋은 담당과장은 갈 때마다 인사를 해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굵은 뿔테안경을 연신 위로 올리면서 눈길을 주는 둥 마는 둥 복잡한 진료차트만 뒤적이고 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