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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5

제7병동 4부 마지막파트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떨다 지쳐 말라죽은 것 같던 춘란(春蘭)이 봄이 되자 작은 새싹을 틔우니 나도 몰래 울컥 목이 메어왔다. 나도 어떤 의미에서 병든 아버지에게는 또다시 내일을 살아갈 싹이요, 씨앗인 것이다. 물론, 그 싹이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인 지 그렇지 못할 것인 가는 온전히 싹의 운명적 몫이 되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주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덩그러니 병동이 눈앞에 들어온다. 고독의 성으로 둘러싸인 병동의 담장 위로 윤기 나는 검은 빛깔의 고양이가 이방인(異邦人)의 출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본관에서 근무하는 몸 집 좋은 담당과장은 갈 때마다 인사를 해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굵은 뿔테안경을 연신 위로 올리면서 눈길을 주는 둥 마는 둥 복잡한 진료차트만 뒤적이고 있다. 수..

단편소설 2024.01.09

제7병동 3부

7 병동은 하나의 운명공동체다. 법 없이도 살만큼 순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툭하면 푼돈을 빌리고 고래심줄처럼 갚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었고 먹지 말라는 술을 몰래 마시고 와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주정뱅이가 골치를 아프게도 하였다. 취미생활도 취향대로 제각각 다양하여 낚시를 즐겨하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물가로 몰려다니며 강태공의 후예를 자처하였고 방에서 좀처럼 잘 나오지 않는 은둔자들은 책과 음악에 파묻혀 세월을 잊었다. 썰렁하고 칙칙한 옥상을 천국의 하늘정원으로 바꾸어 놓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화분마다. 눈물겨운 생명의 손길을 쏟아부었다. 마땅하게 취미가 없는 사람들은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며 쓸모없는 참견인 노릇도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병동 맞은편에 있는 지하 길다방에서 젊은 날의 무용..

단편소설 2024.01.09

제 7병동 2부

그곳은 작은 의료원안에 특정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만 격리수용하는 이층 블록건물이다. 건축한 지가 오래되었는지 여기저기 벗겨진 흰색페인트의 외관은 창백한 환자들의 얼굴을 닮아있었고 일반병동처럼 병문안 오는 사람도 드물어 자칫, 텅 빈 건물로 오해할 만큼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병실복도에 들어서면 간단한 개인취사도구도 눈에 띄었고 생기 없이 퀭한 눈으로 바라보는 깡마른 사내들의 ㅁ무표정한 눈길이 따가운 화살처럼 날아왔다. 습한 여름철에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병원특유의 약물냄새가 뒤섞이어 비위를 건드렸다. 눅눅해진 복도구석에서 음습한 그림자가 스멀스멀 돌아다니는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곳, 이곳은 제7병동이다. 탄광촌에서 폐질환을 얻은 사람들이 불치의 선고를 언도받고 기약 없이 요양하면서 치료를 받는 곳이..

단편소설 2024.01.09

제 7병동

영월 가는 길 새벽의 기차역 대합실은 이른 아침 단잠을 깨고 나온 사람들의 피곤함이 낡은 의자에서 마른 먼지처럼 폴폴 피어오르고 있다. 졸음을 깨우며 저 멀리서 충북선열차의 경적소리가 푸른 안개를 헤치고 나직이 들려온다. 일순, 사람들은 자리에서 부스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플랫폼으로 빨려 들어가듯 하나. 둘 모습을 감춘다. 창문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초가을의 고즈넉한 풍광을 무심히 바라보다 불현듯, 유년시절 덜컹대는 밤기차를 타고 무작정 부모님 손에 이끌리어 영문도 모른 채 고향을 떠났던 흐릿한 기억을 좇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까. 레일 위를 쉬임 없이 달리던 기차는 단종애사의 비운을 싣고 말없이 흐르는 동강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칙칙한 흑백영화의 필름처럼 흐릿한데 바람에 하늘거리는..

단편소설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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