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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조권

배 개인 오후 샛강 너머로 오롯이 일곱색깔 무지개가 뜨고 속살거리듯 생경스런 풍경위로 비추이는 햇살이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습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남에게 폐끼칠 정도는 아니고 늙으신 어머니와 툇마루에서 겸상을 하고 수수한 모습의 아내가 부쳐주는 부침개를 먹으며 행복감에 마음이 풍요롭습니다. 외양간에 누렁이가 울음을 울면 로마제국의 흑기사처럼 검은 흑염소들이 코맹맹이 소리로 따라웁니다. 아이들의 검게 탄 얼굴과 짙어가는 신록의 빛깔속에서 계절의 흐름을 가늠하는 산골 논에는 하얀 의관을 차린 선비처럼 고고한 백로가 느긋이 먹잇감을 찾아다닙니다. 시골고향은 한 폭의 동양화 그 여백에서 거늬는 푸근한 인심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리면 썰매타기, 팽이치기, 연날리기에 신이 나 짧은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창작그림 2024.01.08

독수리와 들쥐들

네 발 달린 짐승가운데 가장 빨리 달린다는 치타는 먹이를 잡으면 재빨리 나무위로 끌고 올라갑니다. 그 이유는 자기보다 더 힘이 센 맹수나 하이에나들에게 잡은 먹이를 빼앗기지 않기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밀림의 왕자를 자처하는 사자마저도 하이에나의 조직적이고 끈질긴 공격에 못이겨 먹이를 포기하고 달아나는 광경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아프리카대초원의 청소부라고 불리우는 하이에나의 집요한 협공은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는것 같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도 솔직히 얘기하자면 맹수의 발톱이나 날카로운 이빨도 갖지못하였고 치타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코끼리나 고래처럼 힘이 세지도 못한 나약한 존재입니다. 동물과 비교해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어떻게 지구를 ..

창작그림 2024.01.07

새벽을 달리며

맹추위는 아니지만 산골의 새벽은 코끝에 냉기가 쨍하게 스쳐지나갑니다. 새벽을 달려가니 일하러 오신분들이 모닥불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온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단잠을 깨고 나와 일터로 가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새벽시장도 그렇고 건설현장 밤새 야근하는 근로자분들 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살 수 있는 지도 모릅니다. 시린 손발을 모닥불온기에 녹여가며 일하다 보면 어느새 여명이 밝아옵니다. 동트기전에 가장 춥습니다. 햇살이 서리 내린 대지위에 축복처럼 다사롭게 내려앉으면 어둡던 세상은 기지개를 펴고 잠에서 깨어납니다. 잠시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여유를 가져보며 열심히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새집을 분양합니다

도심변두리 허름한 고옥에 다달이 월세를 내며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빨래조차 잘 마르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괴물처럼 주위에 들어서는 아파트단지의 위용에 눌려 조용히 살아가는 달동네사람들은 잔뜩 풀이 죽어 있습니다. 어느 겨울에는 연탄가스중독으로 아버지,어머니가 생명까지 위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소원하던 내 집, 아파트가 생겨나자 이제는 더 넓고 더 멋진 아파트로 이사갈 욕심에 젖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발전과 진보의 동기도 되지만 때로는 과욕의 덫에 걸려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웃과 허물없이 지내는 주택과 달리 철저하게 단절된 아파트생활은 마치, 높은 담을 쌓은 적막한 성城에서 살아가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행복의 바로..

창작그림 2024.01.05

제 7병동

영월 가는 길 새벽의 기차역 대합실은 이른 아침 단잠을 깨고 나온 사람들의 피곤함이 낡은 의자에서 마른 먼지처럼 폴폴 피어오르고 있다. 졸음을 깨우며 저 멀리서 충북선열차의 경적소리가 푸른 안개를 헤치고 나직이 들려온다. 일순, 사람들은 자리에서 부스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플랫폼으로 빨려 들어가듯 하나. 둘 모습을 감춘다. 창문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초가을의 고즈넉한 풍광을 무심히 바라보다 불현듯, 유년시절 덜컹대는 밤기차를 타고 무작정 부모님 손에 이끌리어 영문도 모른 채 고향을 떠났던 흐릿한 기억을 좇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까. 레일 위를 쉬임 없이 달리던 기차는 단종애사의 비운을 싣고 말없이 흐르는 동강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칙칙한 흑백영화의 필름처럼 흐릿한데 바람에 하늘거리는..

단편소설 2024.01.03

아주 오래된 사랑

누구에게나 불처럼 뜨겁고 덜익은 풋사과맛같은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이 있습니다. 가만히 혼자 누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이고 사소한 몸짓, 말투, 심지어 단점조차도 사랑스러워 질 때 사람들은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 라며 놀려댑니다. 하지만, 첫사랑은 잘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곰곰이 그 연유를 생각해보면 상대에게 너무 기대심이 크거나 서투르거나 사소한 오해 등 한 번 씩 겪어야 되는 홍역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된 연인은 애틋함보다 정이 더 든다고 합니다. 서로를 알아가고 익숙학지고 속도를 맞추면서 동반자가 되어가는 것, 사랑은 일방적인 소유도 환상도 아닙니다. 사랑은 거창한 것도 요란한 것도 아닙니다. 강물이 그렇듯 그저 잘 흘러가 주는 것 한결같은 마음으로 ..

창작그림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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