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제7병동 4부 마지막파트

카인과 아벨k 2024. 1. 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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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떨다 지쳐 말라죽은 것 같던 춘란(春蘭)이 봄이 되자 작은 새싹을 틔우니 나도 몰래 울컥 목이 메어왔다. 나도 어떤 의미에서 병든 아버지에게는 또다시 내일을 살아갈 싹이요, 씨앗인 것이다. 물론, 그 싹이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인 지 그렇지 못할 것인 가는 온전히 싹의 운명적 몫이 되겠지만 말이다. 오늘은 주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덩그러니 병동이 눈앞에 들어온다. 고독의 성으로 둘러싸인 병동의 담장 위로 윤기 나는 검은 빛깔의 고양이가 이방인(異邦人)의 출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본관에서 근무하는 몸 집 좋은 담당과장은 갈 때마다 인사를 해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굵은 뿔테안경을 연신 위로 올리면서 눈길을 주는 둥 마는 둥 복잡한 진료차트만 뒤적이고 있다. 수시로 아파서 찾아오는 응급환자와 병이 나아서 퇴원하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눈코 뜰 새가 없는 모양이다. 비슷한 증세를 갖고 있는 7 병동 사람들은 조금씩 시들어가는 마른 꽃잎 같다. "잘만 관리하면 주어진 수명대로 살 수 있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면 합병증이 올 수 있는 데 그렇게 되면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손을 데기가 어렵습니다."는  과장의 말에도 크게 괘념치 않는다. 다만, 환자의 보호자들은 과장의 말에 귀를 쫑긋 대며 혹시나 희망을 건질만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보지만 안타깝게도 결론은 늘 산통치 않은 실망감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독한 약을 식후마다 한 움큼씩 털어 넣고 약발이 받지 않으면 더 독한 약을 먹게 되고 그래도 고통을 견디기 어려우면 잘 보이지도 않는 혈관을 찾아 진통제 주사를 놓다가 제대로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면 육체는 걷잡을 수 없는 쇠약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지하동굴의 흡혈박쥐처럼 미소 짓는 병균들은 승전고를 울려대며 악마의 축제를 벌인다. 눈물샘조차 말라버린 깊게 파인 눈을 집요하게 콕콕 찍어대는 영민한 까마귀들은 저주의 밀사처럼 병실주위를 기분 나쁘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7 병동 병실 중에서도 가장 위중한 환자가 머무는 곳은 살아서 그 방을 다시 나오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을 아버지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 병실로 옮기기 전 아버지는 어머니와 나에게 벽지를 화사한 색깔로 바꿔줄 것을 부탁하였다. 꽃무늬가 들어있는 벽지로 바꾸고 나니 우중충하던 병실이 화사해졌지만 중환자실에나 있을 법한 산소공급통을 바라보면서 평소 깔끔한 성품처럼 가지런히 다림질해 놓은 옷들을 힘없이 만져보던 아버지의 그 우수에 찬 눈빛이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들린 누이는 새색시의 수줍음처럼 곱게 피어난 영산홍화분을 사다놓았다. 며칠 씩 화사한 자태를 뽐내는 꽃잎들이 속절없이 시들어지는 것을 보고 속으로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말 못 하는 미물들도 보이지 않는 기운을 느끼는구나' 가족들은 누구 하나 불경스러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두운 표정만큼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의 중압감 앞에서 나는 무거운 침묵으로 알 관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회한의 눈물만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봄비를 맞으며 떨어지던 목련꽃이 삼월폭설에 깜짝 놀라 우수수 간 곳 없이 사라지고 난 새벽, 아버지는 갓 육십을 넘긴 나이로 오래 묵었던 병동과의 긴 작별을 고하였다. 외로운 고독의 섬을 떠나 깃털처럼 훌훌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7병 동의 삼월은 내 가슴에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종결

**삼가 이 글을 진폐로 고생하시는 환자분과 그가족 분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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