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재배일기

서두르지는 말되 늦지는 말아야되는 농사

카인과 아벨k 2022. 7. 1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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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우연히 고향 친구로부터 150평가량 되는 밭농사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제의받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선뜻해보기로 승낙을 했다. 숯가마일을 하는 친구가 밭농사까지 하려니 버겁다고 하소연도 하였고 그렇다고 밭을 놀릴 수도 없다고 하니 딱한 생각도 들고 몇 년 손을 놓은 주말농장 탓에 무료하기도 해서 덜컥 앞뒤 재보지도 않고 약조를 한 것이다. 집에와서 아내에게 조심스레 얘기를 꺼내니 그렇지 않아도 바쁜 사람이 무슨 농사냐며 펄쩍 뛰며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한 번 내뱉은 말을 어찌 다시 뒤집을 수가 있겠는 가. 아내에게 일절 도와달라는 말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시작하게 된 농사는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겨울부터 미리 밭정리도 하고 밑거름도 내고 1년 농사를 계획해야 하는 데 남들 감자 심는 삼월이나 되어 부랴부랴 시작하다 보니 준비할 것도 많았다. 우선은 고추를 주력으로 하고 나머지 작물은 소소하게 지인들과 나누어 먹을 정도만 파종하였다. 산밑에 밭이 있다 보니 씨앗을 심으면 산비둘기들이 날아와 파먹기 일쑤였고 고추는 어찌 알고 찾아왔는지 고라니가 새순을 뜯어먹어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깡통도 달아 소리로 쫓고 고추지줏대에 비료포대를 씌워 바람에 펄럭여 겁을 주기도 하며 귀동냥으로 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가까스로 살려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이제는 풀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말그대로 뽑고 돌아서면 다시 돋아나는 잡초에 기진맥진할 수 없이 제초제를 살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밭에 갈때마다 뽑아준 노력 덕분인지 하나 둘 수확물이 생겨났다. 너무 일찍 심어 냉해를 입은 호박에서도 주렁주렁 애호박이 달렸고 연한 호박잎은 살짝 데쳐서 된장국에 찍어먹으니 아주 별미였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 상추는 지인들에게 인심 좋게 나누어 주었고 주렁주렁 매달린 오이는 여름날 오이냉국이나 냉면에 넣어먹으니 그 맛이 시원하고 맛이 좋다. 요즘은 옥수수가 익어가니 거두는 재미가 쏠쏠하다. 몇포기씩 심은 수박도 여러통달렸고 노란 참외가 하우스 재배한 것처럼 달지는 않아도 먹을 만하였다. 초복이 되어 심은 들깨는 마침 비가 내려 생기가 있고 요소비료를 주었더니 바람에 흔들리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순을 쳐줘야 알이 많이 달린다고 해서 틈나는 대로 순을 쳐준다. 장마철이 되니 잡초가 또 극성을 부린다. 어찌보면 잡초는 나에게 있어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만 자연의 이치로 보면 그곳에 씨앗을 틔워 자라려는 본능에 충실한 것이고 보면 농사란 어찌 보면 자연의 순리에 다소 역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무었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자연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하랴.

나는 일개 농부에 불과하고 고매한 철학적 명제를 가지고 운운할만한 처지가 아닌 것을... 자식을 기르듯 각 작물의 특성과 재배법이 다르니 거기에 맞는 맞춤형 사고와 관리는 또 다른 공부이자 즐거움이기도 하였다. 밭일에 몰두하다보면 아무런 잡생각도 나지 않고 스트레스도 잊게 되니 육체노동이 힘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얼굴과 손이 새까맣게 그을려도 그 흘리는 땀방울을 잊지않고 정직하게 되돌려주는 대지의 여신에게 감사할 뿐이다. 농사란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예측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정성을 들여도 하늘과 바람과 땅이 도와줘야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래서 평생 농사를 업으로 해오신 농부도 늘 어렵다고 하는 것 같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농사는 미리 서둘러서도 그렇다고 시기를 놓쳐서도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닌 가. 농사를 지으면서 배우는 또 하나의 깨달음이다. 옛부터 우리나라에 맞게 24절기를 만드신 조상님의 지혜에 다시 한번 감복하게 된다. 4차혁명시대에 접어들면서 상당 부분 첨단기술과 장비들이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곡물 재배만큼은 인간이 손길이 가지 않으면 그 결과물을 내기 어려운 분야다. 그래서 곡물강국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골에 가보면 농사짓은 분들의 연령이 고령화되어 미래농업의 청사진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거시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오늘도 동이 트는 새벽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는 발걸음이 설레고 가볍기만 하다. 농사는 힘들지만 나에겐 보석 같은 선물이며 달콤한 삶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너무 행복한 초보 농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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